행복과 가난의 관계를 생각하며 산행동무였던 이웃화가가 도시를 벗어나 멀리 이사를 갔다. ‘가난이 무서워’ 도시를 떠난다고 했다. 하지만, 정확한 이유는 아닌 듯했다. 시골에 간다고 해서 그녀가 가난을 벗어날 것 같지도 않으니까. 오히려 도시에서 가난한 것이 무서워, 아니 도시에서 가난하면서 행복하기 힘들어서 도망치듯 도시를 떠나버린 것이 분명하다. 그녀가 도시에 머물러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이 전혀 없었다고 생각지 않는다. 물론 큰 돈을 벌지는 못했겠지만, 적어도 도시에서 생존할 만큼은 벌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와 같은 도시 삶을 선택함과 동시에, 그림 그릴 여유도, 자연과 벗하는 한가로운 삶을 살 기회도 박탈당하게 되리라 생각했던 것 같다. 그녀가 실패한 삶은 ‘도시에서’ 생존할 돈을 마련하면서..
제주시에서 한라산을 넘어 서귀포에 도착했다. 전화 통화를 끝낸 몇 분 후, 저만치서 하얀 모시옷을 입은 이유순 선배가 지축을 울리는 듯한 걸음으로 성큼성큼 다가왔다. “야! 밥 먹으러 가자! 멋진 총각이 하는 식당이 있는데 너 소개시켜주마!” 덥석 내 손을 잡아 끌더니 훠이훠이 앞장서 걷는다. 마치 애니메이션에 나오는 거인의 발걸음처럼. 팔월 더위에 무작정 잡혀진 내 손은 종종걸음으로 이끌려간다. 그렇게 온몸으로 다가와 말을 걸고, 금새 마음자리 한 켠에 턱 하니 자리 잡는 유순선배의 인상은 순간, 안도 미키에의 동화에 나오는 머리를 부딪힌 곰을 떠올리게 한다. 곰벌에게도, 거북이에게도, 송충이에게도 다정하고 친절한 그 곰처럼, 만나게 되는 모든 인연에게 막걸리 잔 철철 넘치듯 자기를 퍼주는 사람. 자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