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찾기, 2008.01)의 작가 전정식은 다섯 살 때 벨기에로 입양됐다. 만화는 해외 입양된 작가의 자전적 삶을 토대로 한다. 노란색 앞표지에는 입양 당시의 서류가, 뒷표지에는 이름과 번호가 함께 박혀있는 그의 어린 시절 사진이 실려 있다. 만화는 전체 2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에서는 배고픔에 지쳐 서울의 어느 거리를 헤매던 다섯 살 어린 나이의 기억과 고아원에서 벨기에로 입양되기까지의 과정, 그리고 언어가 다르고 피부색이 다른 새로운 가족과의 만남이 섬세하게 나열된다. 2부에서는 입양인이라는 정체성 고민, 주변 입양인과의 관계, 친구들의 비극적인 자살, 한국에 대한 이끌림 등이 묘사되어 있다. 생모=‘한국전쟁+가부장제+모성’ 그리고 해외입양 어린 시절의 화자와 마흔 두 살이 된 화자의 목소리는 때때..
제주시에서 한라산을 넘어 서귀포에 도착했다. 전화 통화를 끝낸 몇 분 후, 저만치서 하얀 모시옷을 입은 이유순 선배가 지축을 울리는 듯한 걸음으로 성큼성큼 다가왔다. “야! 밥 먹으러 가자! 멋진 총각이 하는 식당이 있는데 너 소개시켜주마!” 덥석 내 손을 잡아 끌더니 훠이훠이 앞장서 걷는다. 마치 애니메이션에 나오는 거인의 발걸음처럼. 팔월 더위에 무작정 잡혀진 내 손은 종종걸음으로 이끌려간다. 그렇게 온몸으로 다가와 말을 걸고, 금새 마음자리 한 켠에 턱 하니 자리 잡는 유순선배의 인상은 순간, 안도 미키에의 동화에 나오는 머리를 부딪힌 곰을 떠올리게 한다. 곰벌에게도, 거북이에게도, 송충이에게도 다정하고 친절한 그 곰처럼, 만나게 되는 모든 인연에게 막걸리 잔 철철 넘치듯 자기를 퍼주는 사람. 자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