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신의 도서관 나들이(46) 완벽주의의 경계 언젠가부터 나는 잘 알지 못하는 곳을 찾아가는 동안에도 ‘길을 잃지 않을까?’하는 불안이나 두려움이 없어졌다. 그렇다고 나의 공간 지각력이나 방향감각이 좋아졌다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길을 잃고 헤매는 것에 담담해졌다고 해야 할까? 아니, 길을 찾아 방황하는 것이 재미나고 즐거웠다. 우연히 만난 이름 모를 길들, 익숙지 않은 풍경들이지만, 내가 가고자 했던 곳보다 더욱 강렬한 기억으로 남기도 했다. 때때로 의식의 표면 위로 불쑥 떠올라 삶에 빛깔을 더해줄 때면 길을 잃은 행운에 감사한다. 가끔 목적지도 없이 낯선 길을 일부러 배회하는 것도 이런 놀라운 경험 때문이다. 길 찾기와 닮은 우리 삶 내가 살아온 방식, 살아가는 방식도 길을 찾아가는 방식과 비슷하다...
윤하의 딸을 만나러 가는 길 (12) 저녁식사를 마쳤을 만한 늦은 저녁이면 우리 동네 사람들은 산책을 많이 한다. 공원이나 하천변을 거니는 사람들을 만나기란 어려운 일이 아니다. 나도 그들 틈에서 산책하는 걸 좋아한다. 어제 저녁, 공원에서는 이웃 주민 두 명을 만났다. 일부러 연락하며 볼 만큼 가깝게 지내는 이들은 아니지만, 길에서 부딪치면 인사를 나누고, 이렇게 산책길에 우연히 만나기라도 하면, 함께 걸으며 사는 이야기를 하기도 하는 사이라서 반가웠다. 그러나 흥미로운 화제 거리가 없어, 그들과 이야기 나누는 건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데, 어제도 예외는 아니었다. 게다가 한 명은 너무 남편과 자신을 동일시하는 태도 때문에 호감을 느낄 수 없는 사람이다. 유명 대기업에 다니는 남편에 대한 자부심이 커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