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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라의 와이너리>(winery) 12. 와인에 매겨지는 '관세' 이야기 
 
집에 돌아왔다. 오랫동안 그리워하던 친구들, 가족과의 반가운 만남이 곧 일상이 되었다. 그리고 동시에, 소소한 일상이었던 것으로부터 멀리 떨어졌다. 다 좋다. 이제 내가 사는 서울엔 안개 낀 바닷바람이 없는 대신에 집 앞에서 버스 타고 가 쓱 오를 수 있는 대도시 속 국립공원 북한산이 있다. 높고 커다란 하늘과 일 년 내내 명랑한 햇빛은 없지만, 예쁘면서도 지랄 맞은 사계절이 순서대로 찾아와 마음을 담금질한다.
 
문제는, ‘소소한 일상’ 중 하나였던 와인(과 맛있는 맥주)이 비싸졌다는 거다. 그것도 엄청. 다른 지역보다 캘리포니아 와인이 훨씬 더 비싸게 느껴져 더욱 슬프다. 아마도 상대적으로 다른 와인지역보다 현지 가격을 빤히 알고 있는데다가 국내에 수입되는 캘리포니아 와인이 극히 제한적이라 그럴 테다.
 
한국에 온 캘리포니아 와인, 왜 비싸졌을까
 
2년 전 방 빼고 보따리 싸들고 한국으로 이사 오는 나의 가방엔 와인이 세 병 있었다. 많이들 알고 있듯이 우리나라 입국 시 술의 면세 범위는 (1) 1리터 들이 이하, (2) 미화 기준 400달러 이하, (3) 1병이다. 그게 위스키이든, 와인이든, 맥주이든 종류나 알코올 도수에 상관없이 이 규정은 다 똑같이 적용된다.

술을 담고 있는 용기가 1리터 들이 이상이면 1리터를 넘는 어치만 과세되는 게 아니라 전체가 과세대상이다. 마찬가지로 가격이 400달러 이상이면 넘는 부분에 대해 과세되는 것이 아니라 전체가 과세대상이다. 면세범위를 넘어서면 공항에서 세금을 내야하거나 며칠 내 다시 출국한다면 해외로 도로 가지고 갈 수 있다.
 
그럼 한 병은 빼고, 입국 시 내가 가지고 있던 나머지 와인 두 병은 어떻게 되었냐고? 세관에서는 유명한 와인의 가격 리스트는 가지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매의 눈을 가진 세관원의 눈에 내 차림새나 가방 안 물건의 수준으로 미루어보건데 내가 가지고 온 와인의 가격이 고가일 리가 없는 게 빤했다. 하지만 수천, 수만 가지 와인 중 이 와인이 얼마짜리인지 확인하기도 번거롭고, 내가 영수증을 갖고 있을 리도 만무했다. 그렇다고 와인 두 병을 과세하지 않을 수도 없으니 세관원은 각 10달러씩으로 ‘쳐서’ 두 병에 15달러를 과세했다. 이 액수가 어떻게 계산된 것인지 알아보자.
 
우리나라 주류에는 기본적으로 주세, 부가가치세, 교육세가 붙고, 수입주류에는 당연히 관세가 더 붙는다. 1만 원짜리 와인에 관세 15%가 붙으면 11,500원이 되고, 여기에 주세 30%인 3,450원이 붙어 14,950원이 되고, 다시 이 주세의 10%에 해당하는 교육세 345원이 붙어 15,295원, 여기에 부가가치세 10%가 붙으면 도합 16,825원이 된다. 원래 가격 1만원에 세금으로 7천원 가까이 붙는 거다.
 
거꾸로 계산해보면, 마트에서 1만 원짜리 와인에 붙어있는 세금 5,944원을 빼고 난 4,056원이라는 액수에는 와인수입원가에다 유통과정의 모.든. 마진이 붙어있는 액수다. 그렇다면 이러저러한 마진을 빼고 나면 와인의 수입원가가 도대체 얼마란 말인가? 원가가 터무니없이 낮거나, 아니면 생각보다 마진이 매우 적다는 결론이다. 물론 이것은 소매가격의 경우에 말이다.
 
자유무역협정이 이루어졌다고 해서 칠레나 미국, EU에서 들여온 와인가격이 눈에 띄게 내려가는 것은 아니다. 와인에 부과되는 관세 15%만 붙지 않는 것이지, 나머지 운송비, 보험, 주세, 교육세, 부과세, 수입상과 도매상 마진 등은 여전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것도 수입상과 도매상이 면세되는 관세만큼을 빼고 가격을 새로 매겼을 경우에나 해당된다.
 
와인의 관세율 15%는 사실 맥주(30%)나 위스키(20%)에 비해 비교적 낮다. 그리고 주세 자체도 제조원가의 72%가 붙는 맥주나 위스키에 비해 와인은 30%이니 착한 편이라 할 수 있겠다. 그렇다면 왜 국내 와인가격을 결정짓는 요소 중에서 세금이 문제라고 하는가? 결정적으로 세율 자체가 문제라기보다는 위의 세금 산출방식이 종량세가 아니라 종가세라는 점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즉, 가격이 비싼 와인이면 그만큼 세금이 더 많이 붙는다.
 
옆 나라 일본도 주류 관세를 가격이 아니라 용량에 과세하는 종량세 제도이다. 와인의 경우 리터 당 70엔이니, 750ml 와인 한 병 당 625원 정도의 관세가 붙는다. 수입원가가 120만 원 이하까지는 가격의 고하를 막론하고 똑같은 액수의 관세가 용량에 적용된다. 홍콩은 지난 2008년 아시아의 와인 허브가 되겠다는 포부를 갖고 과감하게 와인에 관세를 없앴다. 미국은 와인 관세가 리터 당 1-2달러 정도이고, 영국은 와인 한 병 당 2파운드 안팎이다.

우리나라 와인 관세 15%가 국내 다른 수입주류보다 낮다고 해도 수입원가 1만 원짜리 와인 한 병에 1,500원이고 10만 원짜리 한 병에는 15,000원이다. 오호통재라! 와인 값 이야기하다보니 와인 맛이 급 떨어진다.
 
여기서 한 가지 다른 측면도 고려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와인시장의 규모가 상대적으로 작기 때문에 우리나라 와인의 수입단가 자체가 비싸다는 점을 무시할 수 없다. 이 상황을 바꿀 수 있는 방법으로는 아마도 와인을 많이 마셔서 와인시장을 키우는 것이 유일하지 않을까? 그럼, 얼마나 많이 마셔야 되나?
 
2010년 각국 인구당 세계 와인소비량 통계를 보면 프랑스는 45.7리터, 이탈리아는 42.15리터, 미국은 9.4리터, 홍콩은 6.47리터, 일본은 1.88리터다. 우리나라? 0.5리터다. 2011년 이후의 통계도 확인해봐야 하겠지만, 우리나라는 2007년 통계 대비 2010년의 와인 소비량이 30%나 떨어지는 꾸준한 감소추세였다.
 
소주나 맥주에 비해 와인 소비자의 숫자가 월등히 적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 계산해보면, 와인을 사랑하는 인구가 두당 감내해야 할 분량이 어마어마하다. 지금 이 칼럼을 읽는 여러분, 오늘 밤 자기 전에 가슴에 손을 얹고 각자 생각해보자. 나는 국내와인가격을 끌어내리기 위해 얼만큼의 희생(?)을 감당할 것인가? 암담하게만 생각할 게 아니라 즐겁게 생각하자. 더 많은 친구들을 끌어들이자.
 
‘그 때 그 맛’을 느끼기 어려운 이유 

▲ 여행지에서 나 자신에게 띄운 엽서들.     © 여라 
 
여행 갔다 집에 돌아오기 전 나는 버릇처럼, 어떤 통과의례처럼 나 자신에게 엽서를 띄운다. 여행지에서 느낀 감상을 끄적이기도 하고, 그 날 있었던 사건이나 집에 가서 할 일을 적기도 한다. 여행에서 돌아와 몸과 마음이 일상에 적응할 즈음 먼 곳에서 내가 나에게 보낸 엽서를 받는 느낌이 참 좋다. 긴 여행일 때는 다닌 여행지마다 띄운 엽서 몇 장이 이미 집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을 때도 있다. 지난 11월 캘리포니아 와인여행에서 돌아온 며칠 뒤, 우편함에 내가 부친 엽서 두 장이 차례로 배달되었다. 그 중 하나:
 
“다시 Cambria에 왔다.
왜인지 어릴 때 살던 사택 같아 편안한 115년도 넘었다는 집에 묵고, Paso Robles 가는 길이다. 저번처럼 French Corner에서 시금치 크라상 하나 사 갖구.. (스마일 얼굴)
오늘도 갈 길이 멀도다.”
 
그렇게 와이너리 돌아다니며 테이스팅하고 통관하며 낼 세금을 감수하고 줄이고 줄여 집에 겨우 몇 병 가져오는 와인은 현지에서 맛보았던 것과 이상하게도 매번 다른 맛이다. 이론상으로는 같은 맛이어야겠지만 분명 다르다.
 
최근에 꽤 흥미롭게 읽은 ‘백석의 맛’은 시인 백석의 시에 등장하는 여러 음식에 관한 고찰을 담고 있다. 그 중에는 우리가 맛을 어떻게 기억할까를 이야기하는 부분이 있다. 인간의 감각 중에서 시각과 청각으로는 의미를 기억하는데, 미각과 후각으로는 의미 보다는 에피소드나 상황을 기억한단다.
 
그러니, ‘식객’의 우상병은 군대 시절 구병장이 끓여주던 잊을 수 없는 라면을 다시 맛볼 수 없고, 임진왜란 때 신의주로 피란 갔다 궁으로 돌아온 선조에게 도루묵이 ‘그 때 그 맛’이 아니다. (그리고 이 이론에 의하면 와인을 평가하기 위해 맛을 객관적이고 체계적이고 분석하는 와인 테이스팅은 지극히 부자연스러운, 그러므로 부단한 훈련이 필요한 일이다.)
 
저자는 백석의 시 속에 등장하는 음식이 기억에 닿아있는 이유를 미각의 또 다른 특징에서도 찾는다. 미각은 시각, 후각, 청각, 촉각 등 여러 가지 감각이 서로 영향을 미치며 함께 작용하여 인지되는 공감각성이 있다고 한다. 시인이 무이징게국(새우에 무를 썰어넣어 끓인 국)의 맛을 기억하는 방법이 공감각적이다. 친지들과 함께 한 고향 큰댁의 명절날 분위기를 그리고, 친지들 하나하나와 연관되는 에피소드와 함께 그날 음식 냄새, 북적이는 소리 등 여러 가지 감각을 함께 그림으로써 맛의 기억에 다가간다.
 
캘리포니아 와이너리에서 테이스팅한 와인을 집에 가져와 친구들과 과메기에 막회와 함께 마셨다. 집에 와서 마신 그 와인의 맛이 그 때랑 다른 이유는 기억이 다른 탓일 텐데, 즐거운 기억을 새로 지으니 집에 돌아온 맛이 좋다. (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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