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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외된 농촌, 더욱 소외된 이방인
[필자 정정훈님은 공익변호사그룹 공감 소속 변호사로, 최근 대법원에서 인정을 받은(파기환송)한 농촌 이주노동자 임금체불 소송을 담당했습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우리 사회가 대면해야 할 문제가 무엇인지, 현실 진단과 개선 방안에 대해 기고해주었습니다.]
모두 떠나버린 농촌으로 가는 젊은 사람들이 있다. 결혼이주여성이 그렇고, 일손이 없는 텅 빈 들판과 하우스에서 일하는 이주노동자들이 그렇다. 토착적인 지역 농촌에서, 국제적인 풍경과 관계가 형성되고 있다. 도시에 사는 사람들에게, 농촌은 하나의 ‘풍경’이다. 그러나 그 풍경 속의 관계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도시의 시선이 미치지 않는 ‘상처’들을 가지고 있다.
상처와 ‘증거’ - 성추행
이주여성노동자 A씨의 사연은 그 풍경 속 ‘상처’에 관한 것이다. 그 상처를 대면하는 ‘법’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태국사람인 A씨는 고용허가제로 한국에 입국해, 전남 영암군의 한 화훼농원에 근무하게 됐다. 고된 일이었다. 월급도 제 때 지급되지 않았다. 농원 일은 하우스에서 하루 종일 허리를 굽혔다 펴고, 앉았다 일어서는 것을 반복하는 작업이었다. 계약서에는 오전 7시 30분부터 오후 4시 30분까지가 근로시간으로 되어있었지만, 마감시간이 돼도 일이 끝나지 않았다. 매일 초과근로를 해야 했다. 휴일에도 일했다. 하지만 A씨에게 지급된 임금은 기본급인 78만6천480원이 전부였다.
그렇게 하루 일을 마칠 때가 되면, 다리가 퉁퉁 부어 오르곤 했다. 그러나 작업이 끝난 후의 휴식도 제대로 보장받지 못했다. 일이 끝난 후에는 한국인 ‘사장’이 안마를 요구하는 등, 성적인 폭력과 괴롭힘을 당하기도 했다.
결국 A씨와 4명의 동료들은 성추행과 임금체불을 이유로, 사업주를 고발했다. 하지만 성추행 고발 건은 ‘혐의가 입증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불기소로 종결됐다. ‘증거’가 없으면, ‘상처’도 없다고 보는 것이 법의 눈이다.
상처와 ‘해석’ - 근로기준법 제63조
불행 중 다행, ‘임금체불’ 부분은 지방노동사무소에서 인정이 됐다. A씨는 사업주에게 연장근로수당 및 휴일근로수당을 지급하라는 소송을 제기했다. 그러나 1심, 2심 법원은 모두 사업주에게 체불임금을 지급할 의무가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이번에는 ‘증거’가 아니라 법의 ‘해석’이 문제였다.
하루 10시간을 일했다면, 일반적으로는 연장근로에 대한 가산수당이 적용돼 11시간(8시간+2시간×1.5)에 해당하는 임금을 지급받게 된다. 그러나 근로기준법 제63조의 규정은 그와 다르다. 제63조에 의하면 농축수산업의 경우, 근로기준법이 정한 근로시간과 휴게와 휴일에 관한 규정이 적용되지 않는다.
이 규정의 의미는 무엇일까? 연장근로(2시간) 자체가 인정되지 않는다는 것인가, 아니면 연장근로에 대한 가산수당(1시간)만이 인정되지 않는다는 것인가. 당사자 간에 다른 합의가 있다면 어떤가? 또 최저임금법을 고려한다면 문제가 달라지는가? 이 사건의 쟁점은 원고들이 지급받아야 하는 임금이 11시간, 10시간, 8시간의 세 가지 중 어느 것인지를 판단하는 것이었다.
A씨가 체결한 표준계약서에는 임금란에 “연장, 야간, 휴일근로에 대해서는 시간외 근로수당 지급”이라고 명시되어 있다. 그러나 하단에 “근로기준법 제63조의 농림, 축산, 양잠, 수산사업의 경우 동법상의 근로시간, 휴게, 휴일에 관한 규정은 적용 받지 아니함”이라고 기재되어 있다. 1심과 2심 법원은 이 하단의 기재를 당사자 간의 합의로 판단한 것이다.
1,2심 법원이 근로기준법 제63조에 대해 내린 해석은, 10시간을 일했더라도 8시간 임금만 지급하면 된다는 것이다. 2심 법원은 “근로기준법 제63조 제1호에서 규정한 사업장에 해당되는 경우에는 근로자가 근로기준법이 규정하는 연장 및 휴일근로를 하는 경우는 있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매월 지급되는 임금에 총 근로에 대한 대가가 포함되어 지급되는 것”이라는 이유를 제시했다.
반면, 대법원에서는 10시간의 임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입장에서, 원심법원의 판결을 파기환송했다. (대법원 2009. 12. 10. 선고 2009다51158)
근로계약서에 근로기준법 제63조 1, 2호에 관한 규정이 명시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연장, 야간, 휴일근로에 대해서는 시간외 근로수당 지급”이라는 기재가 있다는 이유다. 또한 정규근로시간 이외에 2시간의 추가근로를 기재한 이상, 계약서상에 2시간의 통상임금은 지급한다는 당사자 간 합의가 존재한다는 점이 대법원 판결의 근거였다.
대법원 판결에서 다루지 않은 쟁점 - 최저임금법
대법원 판결로 A씨와 4명의 동료는 체불임금을 지급받을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러나 대법원 판결이 다루지 않은 중요한 쟁점이 있다. 그 쟁점은 A씨의 ‘작은 승리’가 더 많은 이들에게 돌아가게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다루어졌어야 할 부분이다.
A씨에게 지급된 월 78만6천480원의 임금은 2007년 노동부가 고시한 최저임금이다. A씨와 마찬가지로 이주노동자의 99%는 정부가 고시한 최저임으로 기본급이 결정되고 있다. 이 사건에서 A씨는 설사 ‘당사자 간에 합의가 없다고 하더라도’, 추가근로(2시간)에 대한 통상임금을 지급하지 않는 것이 최저임금법을 위반하는 결과를 가져올 경우에는 근로기준법 제63조가 적용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 부분 상고이유에 대한 판단은 ‘생략’됐다. 대법원은 임금지급에 대한 ‘합의가 존재한다’는 상고이유가 ‘이유’ 있으므로 “나머지 상고이유의 주장에 대한 판단을 생략한 채 원심판결을 파기”한다는 것이었다.
대법원이 판단을 ‘생략’해버린 그 지점이 바로 대다수 이주노동자들의 삶을 위협하는 부분이다. 대법원 판결은 이후 표준근로계약서를 수정해 발생할 수 있는 새로운 ‘상처’에 대한 분쟁의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다. 가령, 고용주가 아예 계약서에 근로시간을 특정하지 않는 방식이 그것이다. ‘상처’를 대면하는 법원의 ‘해석’은 관계 속 약자의 현실을 온전히 고려하는 것이어야 한다고 믿는다.
상처와 ‘입법’ - 근로기준법 개정
대법원의 파기환송 판결로, 이 사건은 다시 법원의 판단을 받게 되었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A씨와 동료들이 11시간에 해당하는 임금을 받아야 한다고 믿는다.
근로기준법 제63조의 1, 2호는 농축수산업이 계절과 날씨의 영향을 받는 등 근로시간이 불규칙하다는 업종의 특성을 반영한 것이다. 그러나 기계화된 대규모 영농이 이루어지는 곳에서의 근로환경은, 이전 법률의 취지와는 다른 것이 현실이다. 이 사건 태국인 노동자 A씨의 경우처럼, 비닐하우스에서 일하며 날씨와 계절의 영향을 받지 않고, 일반 제조업 노동자와 동일한 수준의 근로를 요구하는 사업장이 다수 존재한다.
이런 사정을 고려할 수 없다면, 근로기준법 63조 제1, 2호는 풍경 속의 상처를 외면하는 규정이 될 것이다. 오늘의 ‘현실’을 모르는 낡은 법률인 것이다. 이 부분은 법을 개정하는 ‘입법’의 몫이다.
새로운 풍경은 새로운 상처를 만들기 마련이다. 농촌 속 이방인들의 풍경과 상처는 선과 악, 강자와 약자라는 이분법의 대립구도로 재단할 수 없는 문제다. 소외된 농촌이 소외된 이방인의 희생을 요구하고 있다면, 그 현실을 아프고 정직하게 대면해야 한다. ‘증거’(우리의 관심)와 ‘해석’(법원), ‘법률’(국회)이 그 새로운 출발점에 서는 것, 그것이 소외된 농촌과 이방인 모두를 위한 길이라고 믿는다. (정정훈) ▣ 일다는 어떤 곳?
[필자 정정훈님은 공익변호사그룹 공감 소속 변호사로, 최근 대법원에서 인정을 받은(파기환송)한 농촌 이주노동자 임금체불 소송을 담당했습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우리 사회가 대면해야 할 문제가 무엇인지, 현실 진단과 개선 방안에 대해 기고해주었습니다.]
모두 떠나버린 농촌으로 가는 젊은 사람들이 있다. 결혼이주여성이 그렇고, 일손이 없는 텅 빈 들판과 하우스에서 일하는 이주노동자들이 그렇다. 토착적인 지역 농촌에서, 국제적인 풍경과 관계가 형성되고 있다. 도시에 사는 사람들에게, 농촌은 하나의 ‘풍경’이다. 그러나 그 풍경 속의 관계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도시의 시선이 미치지 않는 ‘상처’들을 가지고 있다.
상처와 ‘증거’ - 성추행
이주여성노동자 A씨의 사연은 그 풍경 속 ‘상처’에 관한 것이다. 그 상처를 대면하는 ‘법’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태국사람인 A씨는 고용허가제로 한국에 입국해, 전남 영암군의 한 화훼농원에 근무하게 됐다. 고된 일이었다. 월급도 제 때 지급되지 않았다. 농원 일은 하우스에서 하루 종일 허리를 굽혔다 펴고, 앉았다 일어서는 것을 반복하는 작업이었다. 계약서에는 오전 7시 30분부터 오후 4시 30분까지가 근로시간으로 되어있었지만, 마감시간이 돼도 일이 끝나지 않았다. 매일 초과근로를 해야 했다. 휴일에도 일했다. 하지만 A씨에게 지급된 임금은 기본급인 78만6천480원이 전부였다.
그렇게 하루 일을 마칠 때가 되면, 다리가 퉁퉁 부어 오르곤 했다. 그러나 작업이 끝난 후의 휴식도 제대로 보장받지 못했다. 일이 끝난 후에는 한국인 ‘사장’이 안마를 요구하는 등, 성적인 폭력과 괴롭힘을 당하기도 했다.
결국 A씨와 4명의 동료들은 성추행과 임금체불을 이유로, 사업주를 고발했다. 하지만 성추행 고발 건은 ‘혐의가 입증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불기소로 종결됐다. ‘증거’가 없으면, ‘상처’도 없다고 보는 것이 법의 눈이다.
상처와 ‘해석’ - 근로기준법 제63조
불행 중 다행, ‘임금체불’ 부분은 지방노동사무소에서 인정이 됐다. A씨는 사업주에게 연장근로수당 및 휴일근로수당을 지급하라는 소송을 제기했다. 그러나 1심, 2심 법원은 모두 사업주에게 체불임금을 지급할 의무가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이번에는 ‘증거’가 아니라 법의 ‘해석’이 문제였다.
하루 10시간을 일했다면, 일반적으로는 연장근로에 대한 가산수당이 적용돼 11시간(8시간+2시간×1.5)에 해당하는 임금을 지급받게 된다. 그러나 근로기준법 제63조의 규정은 그와 다르다. 제63조에 의하면 농축수산업의 경우, 근로기준법이 정한 근로시간과 휴게와 휴일에 관한 규정이 적용되지 않는다.
이 규정의 의미는 무엇일까? 연장근로(2시간) 자체가 인정되지 않는다는 것인가, 아니면 연장근로에 대한 가산수당(1시간)만이 인정되지 않는다는 것인가. 당사자 간에 다른 합의가 있다면 어떤가? 또 최저임금법을 고려한다면 문제가 달라지는가? 이 사건의 쟁점은 원고들이 지급받아야 하는 임금이 11시간, 10시간, 8시간의 세 가지 중 어느 것인지를 판단하는 것이었다.
A씨가 체결한 표준계약서에는 임금란에 “연장, 야간, 휴일근로에 대해서는 시간외 근로수당 지급”이라고 명시되어 있다. 그러나 하단에 “근로기준법 제63조의 농림, 축산, 양잠, 수산사업의 경우 동법상의 근로시간, 휴게, 휴일에 관한 규정은 적용 받지 아니함”이라고 기재되어 있다. 1심과 2심 법원은 이 하단의 기재를 당사자 간의 합의로 판단한 것이다.
1,2심 법원이 근로기준법 제63조에 대해 내린 해석은, 10시간을 일했더라도 8시간 임금만 지급하면 된다는 것이다. 2심 법원은 “근로기준법 제63조 제1호에서 규정한 사업장에 해당되는 경우에는 근로자가 근로기준법이 규정하는 연장 및 휴일근로를 하는 경우는 있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매월 지급되는 임금에 총 근로에 대한 대가가 포함되어 지급되는 것”이라는 이유를 제시했다.
반면, 대법원에서는 10시간의 임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입장에서, 원심법원의 판결을 파기환송했다. (대법원 2009. 12. 10. 선고 2009다51158)
근로계약서에 근로기준법 제63조 1, 2호에 관한 규정이 명시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연장, 야간, 휴일근로에 대해서는 시간외 근로수당 지급”이라는 기재가 있다는 이유다. 또한 정규근로시간 이외에 2시간의 추가근로를 기재한 이상, 계약서상에 2시간의 통상임금은 지급한다는 당사자 간 합의가 존재한다는 점이 대법원 판결의 근거였다.
대법원 판결에서 다루지 않은 쟁점 - 최저임금법
대법원 판결로 A씨와 4명의 동료는 체불임금을 지급받을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러나 대법원 판결이 다루지 않은 중요한 쟁점이 있다. 그 쟁점은 A씨의 ‘작은 승리’가 더 많은 이들에게 돌아가게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다루어졌어야 할 부분이다.
A씨에게 지급된 월 78만6천480원의 임금은 2007년 노동부가 고시한 최저임금이다. A씨와 마찬가지로 이주노동자의 99%는 정부가 고시한 최저임으로 기본급이 결정되고 있다. 이 사건에서 A씨는 설사 ‘당사자 간에 합의가 없다고 하더라도’, 추가근로(2시간)에 대한 통상임금을 지급하지 않는 것이 최저임금법을 위반하는 결과를 가져올 경우에는 근로기준법 제63조가 적용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 부분 상고이유에 대한 판단은 ‘생략’됐다. 대법원은 임금지급에 대한 ‘합의가 존재한다’는 상고이유가 ‘이유’ 있으므로 “나머지 상고이유의 주장에 대한 판단을 생략한 채 원심판결을 파기”한다는 것이었다.
대법원이 판단을 ‘생략’해버린 그 지점이 바로 대다수 이주노동자들의 삶을 위협하는 부분이다. 대법원 판결은 이후 표준근로계약서를 수정해 발생할 수 있는 새로운 ‘상처’에 대한 분쟁의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다. 가령, 고용주가 아예 계약서에 근로시간을 특정하지 않는 방식이 그것이다. ‘상처’를 대면하는 법원의 ‘해석’은 관계 속 약자의 현실을 온전히 고려하는 것이어야 한다고 믿는다.
상처와 ‘입법’ - 근로기준법 개정
대법원의 파기환송 판결로, 이 사건은 다시 법원의 판단을 받게 되었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A씨와 동료들이 11시간에 해당하는 임금을 받아야 한다고 믿는다.
근로기준법 제63조의 1, 2호는 농축수산업이 계절과 날씨의 영향을 받는 등 근로시간이 불규칙하다는 업종의 특성을 반영한 것이다. 그러나 기계화된 대규모 영농이 이루어지는 곳에서의 근로환경은, 이전 법률의 취지와는 다른 것이 현실이다. 이 사건 태국인 노동자 A씨의 경우처럼, 비닐하우스에서 일하며 날씨와 계절의 영향을 받지 않고, 일반 제조업 노동자와 동일한 수준의 근로를 요구하는 사업장이 다수 존재한다.
이런 사정을 고려할 수 없다면, 근로기준법 63조 제1, 2호는 풍경 속의 상처를 외면하는 규정이 될 것이다. 오늘의 ‘현실’을 모르는 낡은 법률인 것이다. 이 부분은 법을 개정하는 ‘입법’의 몫이다.
새로운 풍경은 새로운 상처를 만들기 마련이다. 농촌 속 이방인들의 풍경과 상처는 선과 악, 강자와 약자라는 이분법의 대립구도로 재단할 수 없는 문제다. 소외된 농촌이 소외된 이방인의 희생을 요구하고 있다면, 그 현실을 아프고 정직하게 대면해야 한다. ‘증거’(우리의 관심)와 ‘해석’(법원), ‘법률’(국회)이 그 새로운 출발점에 서는 것, 그것이 소외된 농촌과 이방인 모두를 위한 길이라고 믿는다. (정정훈) ▣ 일다는 어떤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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