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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숙영의 Out of Costa Rica (1) *코스타리카에서 유학하고 돌아온 필자 공숙영은 현지에서 마주친 다양한 인상과 풍경을 기록하고자 합니다.
 
돌아왔습니다. 멀더군요. 아주 멀었어요. 너무 멀어 다시 또 가라면 저도 모르게 망연자실 한숨부터 휴 나올 것만 같은. 모르니까 갔지 알고는 다시 갈 엄두가 쉽게 나지 않는. 누가 알겠습니까, 다시 갈 일이 생기지 말란 법도 없겠지요. 애초에 그렇게 머나먼 낯선 나라에서 살아보게 되리라고는 상상조차 못 해 봤듯이, 돌아온 지금에는 다시 거기 간다는 걸 예상하기 어렵지만, 늘 상상과 예상을 뛰어넘는 일이 생기지 않던가요.
 
파랑새는 있다
 

코스타리카의 케찰 ©출처:위키피디아

그곳을 떠나오기 얼마 전 우연히 파랑새를 봤어요. 여느 때처럼 수업을 마치고 귀가하던 길이었는데 집 근처 커피밭 울타리에 홀로 앉아 있더군요. 작은 관을 쓴 듯 깃털이 솟구친 머리에 긴 꼬리를 드리운 파랑새였지요. 파랑새를 보려고 그토록 먼 길을 온 셈이었을까요?

 
동화 속 아이들은 파랑새를 찾으려고 무던히도 모험을 하다가 결국 집에 돌아와 파랑새를 발견했다면서요. 여행 중의 집, 머나먼 타향의 일시적인 거처, 파도가 몰려오면 사라질 해변의 모래성, 떠날 때가 다 되어서야 집 같지 않은 집 근처에 나타난 나의 파랑새.
 
새벽마다 새가 울곤 했었죠. 어김없이 그 소리에 잠을 깨곤 했으니까요. 머리맡에 앉아 우는 듯 가까이 들리던 소리, 지붕 바로 위에 서 있었는지, 처음엔 기이했으나 차츰 익숙해졌습니다. 때로는 다정하기조차 했지요. 매일 새벽이면 낮은 소리로 울고 가던 그 친구가 어쩌면 이 파랑새였을까요?
 
나중에 확인해 보니 모양으로 판단하건대 이 파랑새의 정체는 케찰(Quezal)이 틀림  없습니다. 케찰은 멕시코, 과테말라, 코스타리카 등 중남미에 서식하는 희귀새로서, 특히 과테말라에서는 마야 문명 시절 왕의 수호자로 숭상되었고 현재는 자유와 독립을 의미하는 국조로 지정되어 있으며 화폐 단위 명칭도 케찰이라고 합니다.
 
800종이 넘는 다양한 조류가 산다는 코스타리카는 보호구역을 따로 두어 케찰 같은 희귀새들을 보호한다고 하는데요. 긴 꼬리가 달린 수컷 케찰은 부리가 노랗고 가슴은 붉으며 초록이 감도는 푸른 몸통과 날개를 가지고 있습니다. 암컷은 꼬리가 길지 않고 전체적으로 어두운 색깔이라고 합니다. 케찰은 땅에 잘 내려오지 않고 주로 나무 위에서 생활한다고 하네요.
 
“남북을 통틀어 아메리카에서 가장 아름다운 새”, “특별한 행운이 따르면 볼 수 있다”, “실물은 보지 못하고 박제된 것만 볼 수 있었다”와 같은 글과 말이 검색되는 걸로 보아 집 근처에서 우연히 케찰을 볼 수 있었던 일은 행운이었던 것 같습니다.
 
위키피디아에서 찾은 “둥지로 들어가는 케찰”이란 제목의 사진을 보세요. 2008년 5월에 코스타리카에서 촬영되었다고 합니다. 제가 집 근처에서 본 ‘파랑새’의 모습이 바로 꼭 이랬던 거지요. 뒤와 옆으로만 본 탓에 붉은 가슴이었는지는 미처 보지 못 했고 푸르디푸른 몸통과 날개, 긴 꼬리털만 선명히 제 기억에 파랗게 남아 있습니다.
 
농사짓는 개미 
  

코스타리카 국립박물관의 식물원 입구. 함께 방문한 한국인 유학생 동료(김녹차)가 촬영하였다.

지척에 있던 특별한 친구라면 개미도 빠질 수 없습니다. 항상 나뭇잎 조각을 나르느라 분주한 잎꾼개미(leaf-cutter ant)들은 그 기원이 무려 5천만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고 합니다. 중남미에 서식하는 이 개미들은 특이하게도 잘게 자른 나뭇잎을 먹는 게 아니라 쌓아놓고 그 위에 버섯을 재배해서 먹는다고 하는데, 개미 집단마다 제각기 다른 버섯을 재배하는 등 인간처럼 정교하게 농사를 짓는다는 것입니다.

 
인간으로 치면 300킬로그램이 넘는 무게에 육박하는 어마어마한 중량을 각자 나른다고 하는 이 억척 장사들이 옹기종기 끝없이 떼지어 이동하는 행렬을 처음 보고서는 신기해서 쪼그리고 앉아 한참을 보고 또 보고 했습니다.
 
어느 날에는 방에 앉아 손톱을 깎고 있었는데, 손톱조각 하나가 툭 튀자마자 도대체 어디서 왔는지 개미 한 마리가 잽싸게 나타나 그 손톱조각을 물고 어정어정 달아나는 것이었습니다. 좀 기가 차서 그 꼴을 멍하니 보고 있었지요. 제 손톱조각도 나뭇잎들과 같이 버섯농사에 요긴하게 사용되었을까요.
 
또 어느 날에는 무리로부터 쳐졌는지 이탈했는지 원래 혼자 사는지 자기 덩치보다 족히 몇 배는 커 보이는 이파리 하나를 낑낑 지고 홀로 길을 가는 한 녀석을 만났습니다. 하필 넘기 어려운 큰 돌부리, 아니 그 친구에겐 절벽, 앞으로 한 발자국 한 발자국 다가가고 있었지요.
 
아니나 다를까, 막다른 절벽 앞에 부닥치자 어쩔 줄 모르고 허둥지둥하다가 가까스로 기어오르더군요. 기어오르다가 떨어지고 다시 기어오르다가 또 떨어지고, 그 와중에도 이파리는 절대 놓치지 않고서, 계속 절벽과 대결했습니다. 조금만 옆으로 비켜 달리 갈 수 있는데도 아는지 모르는지 미련하게 오로지 절벽만 타고 넘으려고 어찌나 용을 쓰는지요.
 

잎꾼개미 행렬. 출처-위키피디아


마침내 운명의 여신처럼 저는 녀석이 꼭 붙들고 있던 이파리를 번쩍 들어 절벽 멀리 새로운 길 위에 놓았습니다. 대롱대롱 이파리에 매달려 낯선 곳으로 휩쓸려 와 버린 녀석은 놀랬는지 현기증이 왔는지 영원히 놓지 않을 것만 같던 그 이파리를 그만 놓아 버리고는 가만히 땅 위에 엎드리더군요.

 
조금 있다 기운을 차리고 일어선 녀석은 갖고 있다 놓아버린 이파리는 보지도 찾지도 않더니 근처에 널려 있던 새 이파리 하나를 - 먼저 것보다 훨씬 작은 - 얼른 지고 서둘러 총총 길을 떠나는 것이었습니다.
 
가장 행복한 나라
 
붉은 가슴을 가진 파랑새가 나무 위에서 살고 농사짓는 개미들이 나뭇잎을 나르며 묵묵히 일하는 나라. 2009년 국가별 행복지수 조사에서 143개국 중 1위를 차지한 나라. 콜럼버스가 금장신구를 하고 있는 원주민들을 보고 “부유한 해안”이라는 스페인어 이름을 붙였다는 나라, 코스타리카.
 
가장 행복하다는 이 나라에서 일 년 남짓 살면서 저는 어떤 인간과 세상, 어떤 인생과 행복을 목격하고 체험하였을까요? 실은 저도 궁금합니다, 과연 제가 무엇을 보고 듣고 겪었는지, 결국 무엇을 담아왔는지가. 자, 그럼 심호흡 잠시 하고, 이제 시작해 볼까요.

[국경너머 소식 -> 세네갈 거리곳곳에서 마주치는 ‘딸리베’]  ⓒ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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