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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숙영의 Out of Costa Rica (3) * 코스타리카에서 유학하고 돌아온 필자 공숙영은 현지에서 마주친 다양한 인상과 풍경을 기록하고자 합니다.
입춘도 우수도 지났습니다. 눈이 녹아서 비가 된다는 우수(雨水), 아직 눈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지만 완전히 사라질 날도 머지않았습니다. 달이 바뀌어 춘삼월이 오면 동면한 개구리가 깨어난답니다. 경칩입니다. 길었던 겨울이 가고 봄이 진정 오는 것입니다.
그러나 코스타리카는 겨울을 알지 못하기에 봄 또한 알지 못합니다. 여름과 가을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은 봄 여름 가을 겨울 같은 사계절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눈도 내리지 않고 추위도 없는 코스타리카, 거기에서는 오직 비가 내리다가 바람이 불고 볕이 날 뿐입니다.
내 마음의 비
비 오는 계절, 우기에는 비가 매일 내립니다. 매일 찾아오는 왕진 의사처럼 지겹게 우리를 찾아옵니다. 제 방 위 양철지붕 위를 세차게 때리던 빗소리는 거칠고 둔탁한 음향을 내다가 볼 일을 다 본 듯 종국엔 조용히 사라집니다.
하늘이 회색이니 마음까지 회색이 되기 딱 좋은 사정인데, 특히나 잘 안 마르는 빨래와 슬금슬금 피어나는 곰팡이에 마음이 빼앗깁니다. 방안 구석에 세워놓은 여행가방 위에도 곰팡이가 생겨 해가 나면 방문 밖 해 드는 곳에 세워놓았다가 해가 지면 방 안으로 들여놓아야 합니다.
우기가 가고 건기가 오면 비로소 태양다운 태양을 구경할 수 있습니다. 밝아진 하늘은 새파란 색을 띠면서 구름을 하얗게 만들고, 녹색의 나무는 대낮의 햇빛에 잎사귀를 반짝이며 바람에 살랑살랑 생명의 노래를 열심히 부릅니다.
여전히 가끔 소나기가 내리기도 하지만, 따갑도록 쨍한 햇볕은 빨래를 기꺼이 뽀송뽀송 금방 말려 주어 마르지 않던 빨래 걱정이 사라지고 끈질기게 돌아오던 곰팡이 걱정 또한 덩달아 사라집니다.
이렇듯 태양이 하늘을 뜨겁게 사로잡는 코스타리카의 건기는 12월에서 4월까지의 기간입니다. 같은 시기에 추위가 몰려오는 나라에서 태어난 저 같은 사람-게다가 추위를 무척 타는 -에게는 추위 없는 연말연시를 보낸다는 사실 자체가 매우 특별한 선물이 되는 셈입니다.
바람이 분다
건기에는 대신 바람이 불어옵니다. 밤에 불을 끄고 누워 있으면 창문이 덜컹대는 음산한 소리, 저 멀리 바깥에서 윙윙대는 사나운 소리가 검은 밤을 더욱 어둡게 만듭니다. 아, 이런 게 바로 폭풍의 언덕으로 쉬지 않고 불어대어 가슴 속을 사정없이 헤집어놓는 바람이겠거니 싶을 정도로.
그럴 때는 이마를 베개에 대고 밖에 널어놓은 빨래가 날아가지나 않을까, 양철 지붕 아래 내 방 천정이 꺼지지는 않을까, 잠을 제대로 이룰 수 있을까, 노심초사할 수밖에 없습니다.
옆집 지붕 일부가 날아가고 제 방 천정의 일부라 할 수 있는 우풍막이가 떨어져 내리면서 바람이 새어 들어와 탁자 위에 놓인 작은 잡동사니들이 방바닥으로 우르르 다 떨어져 내려 난리법석이 벌어지는 순간이 결국 찾아옵니다.
바람이 세게 불어서 그런지 가끔 전기가 끊어집니다. 숙제 중이나 샤워 중에 불이 나간 적도 있는데, 전기가 나가서 가장 난처하고 곤란한 일은 아마도 냉장고 깊이 소중히 모셔둔 아이스크림 같은 냉동식품이 아깝게 녹아버리는 일일 겁니다.
어느 날은 옆집-바람에 지붕이 날아갔던 바로 그 집-에서 생일파티를 하다가 도중에 전기가 나가 버려 어둠 속에서 촛불 꽂은 생일케이크를 둘러싸고 생일축하노래를 부르며 어둠을 촛불과 노래로 밝힙니다.
암흑에 대비하려면 양초와 성냥을 손을 뻗어 쉽게 잡을 수 있는 곳에 늘 준비해두는 걸 잊지 말아야 합니다. 초 하나로는 부족합니다. 많을수록 좋습니다. 촛불 하나는 희미하지만 여러 개가 모이면 상상 이상으로 확 밝아진다는 점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어둠을 이기는 촛불
이 주의 날씨예보를 찾아봅니다. 코스타리카의 수도 산호세, 최저온도는 섭씨 21~22도 사이, 최고온도는 30~32도의 분포를 보입니다. 한 주 거의 내내 비와 소나기가 예정되어 있습니다. 당연히 습도도 상당히 높습니다.
이 시기는 우기가 아니라 건기인데 좀 이상합니다. 작년 이맘때 날씨가 어땠는지 기억을 더듬어보다가 기상 사이트에서 찾아봅니다. 비는 거의 오지 않은 걸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습도도 올해만큼 높지 않습니다.
연초에 브라질에 이상폭우와 폭염이 발생했다고 하더니 코스타리카의 날씨도 예년과 다른 변덕을 부리고 있는 건가 의심해봅니다. 비가 내리더라도 잠깐 오다가 바로 그치기를 바랍니다.
눈과 추위가 없는 나라
눈이 유독 많이 내린 올 겨울입니다. 우리 나라뿐만 아니라 미국과 중국 등 세계 여기저기에 기상이변이라 할 정도로 폭설과 강추위가 속출했다고 합니다. 도대체 어디서 나비들이 얼마나 어떻게 날갯짓을 했는지 도무지 짐작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코스타리카는 비가 내리고 바람이 불지언정 폭설도 강추위도 여전히 알지 못합니다. 햇볕이 나면 빨래를 내놓고, 바람이 세게 불어 운 나쁘게 지붕이 부서지면 고치고, 정전이 되면 촛불을 켜야 할 따름입니다. ⓒ일다 www.ildaro.com
[세계] 코스타리카, 행복한 나라| 세네갈 곳곳서 마주치는 ‘딸리베’| 라오스 안에서 보는 라오스
우기의 하늘. 비가 오고 나서 개어 맑은 편이지만 구름이 많다. 코스타리카 국립박물관에서 한국인유학생 동료 김녹차가 촬영했다.
그러나 코스타리카는 겨울을 알지 못하기에 봄 또한 알지 못합니다. 여름과 가을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은 봄 여름 가을 겨울 같은 사계절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눈도 내리지 않고 추위도 없는 코스타리카, 거기에서는 오직 비가 내리다가 바람이 불고 볕이 날 뿐입니다.
내 마음의 비
비 오는 계절, 우기에는 비가 매일 내립니다. 매일 찾아오는 왕진 의사처럼 지겹게 우리를 찾아옵니다. 제 방 위 양철지붕 위를 세차게 때리던 빗소리는 거칠고 둔탁한 음향을 내다가 볼 일을 다 본 듯 종국엔 조용히 사라집니다.
하늘이 회색이니 마음까지 회색이 되기 딱 좋은 사정인데, 특히나 잘 안 마르는 빨래와 슬금슬금 피어나는 곰팡이에 마음이 빼앗깁니다. 방안 구석에 세워놓은 여행가방 위에도 곰팡이가 생겨 해가 나면 방문 밖 해 드는 곳에 세워놓았다가 해가 지면 방 안으로 들여놓아야 합니다.
우기가 가고 건기가 오면 비로소 태양다운 태양을 구경할 수 있습니다. 밝아진 하늘은 새파란 색을 띠면서 구름을 하얗게 만들고, 녹색의 나무는 대낮의 햇빛에 잎사귀를 반짝이며 바람에 살랑살랑 생명의 노래를 열심히 부릅니다.
여전히 가끔 소나기가 내리기도 하지만, 따갑도록 쨍한 햇볕은 빨래를 기꺼이 뽀송뽀송 금방 말려 주어 마르지 않던 빨래 걱정이 사라지고 끈질기게 돌아오던 곰팡이 걱정 또한 덩달아 사라집니다.
이렇듯 태양이 하늘을 뜨겁게 사로잡는 코스타리카의 건기는 12월에서 4월까지의 기간입니다. 같은 시기에 추위가 몰려오는 나라에서 태어난 저 같은 사람-게다가 추위를 무척 타는 -에게는 추위 없는 연말연시를 보낸다는 사실 자체가 매우 특별한 선물이 되는 셈입니다.
바람이 분다
건기에는 대신 바람이 불어옵니다. 밤에 불을 끄고 누워 있으면 창문이 덜컹대는 음산한 소리, 저 멀리 바깥에서 윙윙대는 사나운 소리가 검은 밤을 더욱 어둡게 만듭니다. 아, 이런 게 바로 폭풍의 언덕으로 쉬지 않고 불어대어 가슴 속을 사정없이 헤집어놓는 바람이겠거니 싶을 정도로.
그럴 때는 이마를 베개에 대고 밖에 널어놓은 빨래가 날아가지나 않을까, 양철 지붕 아래 내 방 천정이 꺼지지는 않을까, 잠을 제대로 이룰 수 있을까, 노심초사할 수밖에 없습니다.
옆집 지붕 일부가 날아가고 제 방 천정의 일부라 할 수 있는 우풍막이가 떨어져 내리면서 바람이 새어 들어와 탁자 위에 놓인 작은 잡동사니들이 방바닥으로 우르르 다 떨어져 내려 난리법석이 벌어지는 순간이 결국 찾아옵니다.
바람이 세게 불어서 그런지 가끔 전기가 끊어집니다. 숙제 중이나 샤워 중에 불이 나간 적도 있는데, 전기가 나가서 가장 난처하고 곤란한 일은 아마도 냉장고 깊이 소중히 모셔둔 아이스크림 같은 냉동식품이 아깝게 녹아버리는 일일 겁니다.
어느 날은 옆집-바람에 지붕이 날아갔던 바로 그 집-에서 생일파티를 하다가 도중에 전기가 나가 버려 어둠 속에서 촛불 꽂은 생일케이크를 둘러싸고 생일축하노래를 부르며 어둠을 촛불과 노래로 밝힙니다.
암흑에 대비하려면 양초와 성냥을 손을 뻗어 쉽게 잡을 수 있는 곳에 늘 준비해두는 걸 잊지 말아야 합니다. 초 하나로는 부족합니다. 많을수록 좋습니다. 촛불 하나는 희미하지만 여러 개가 모이면 상상 이상으로 확 밝아진다는 점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어둠을 이기는 촛불
야독(夜讀). 정전이 된 날 가장 넓은 방에 모여 촛불을 잔뜩 밝히니 제법 환하다. 같은 집에서 살던 미국인 유학생 동료가 촬영했다.
이 시기는 우기가 아니라 건기인데 좀 이상합니다. 작년 이맘때 날씨가 어땠는지 기억을 더듬어보다가 기상 사이트에서 찾아봅니다. 비는 거의 오지 않은 걸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습도도 올해만큼 높지 않습니다.
연초에 브라질에 이상폭우와 폭염이 발생했다고 하더니 코스타리카의 날씨도 예년과 다른 변덕을 부리고 있는 건가 의심해봅니다. 비가 내리더라도 잠깐 오다가 바로 그치기를 바랍니다.
눈과 추위가 없는 나라
눈이 유독 많이 내린 올 겨울입니다. 우리 나라뿐만 아니라 미국과 중국 등 세계 여기저기에 기상이변이라 할 정도로 폭설과 강추위가 속출했다고 합니다. 도대체 어디서 나비들이 얼마나 어떻게 날갯짓을 했는지 도무지 짐작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코스타리카는 비가 내리고 바람이 불지언정 폭설도 강추위도 여전히 알지 못합니다. 햇볕이 나면 빨래를 내놓고, 바람이 세게 불어 운 나쁘게 지붕이 부서지면 고치고, 정전이 되면 촛불을 켜야 할 따름입니다. ⓒ일다 www.ildaro.com
[세계] 코스타리카, 행복한 나라| 세네갈 곳곳서 마주치는 ‘딸리베’| 라오스 안에서 보는 라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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