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보다는 사람을, 사진 찍기보다는 이야기하기를, 많이 돌아다니기보다는 한 곳에 오래 머물기를 선택한 어느 엄마와 세 딸의 아시아 여행기입니다. 11개월 간 이어진 여행, 그 길목 길목에서 만났던 평범하고도 특별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같이 나누고자 합니다. 필리핀 보홀 섬 필리핀에서 지내다 보니 집이 별거냐 싶다. 날씨 탓이 크겠지만 여기 집들은 허술하기 짝이 없다. 이음새마다 벌어진 틈으로 바람이 드나들기 일쑤고, 칠이 벗겨졌거나 아예 칠해지지 않은 집들도 많다. 하지만 다들 개의치 않고 산다. 때 되면 밥해 먹고 날 저물면 몸 누여 쉴 수 있는 곳으로 족하기 때문일까. 하긴 원래 집은 그런 것인데, 살다보니 그 단순한 진실이 자꾸만 어렵고 복잡해진다. 보홀 섬 바클라욘(Bohol Baclayon)에 ..
‘윤춘신의 생활문학’ (9) 는 개인의 입체적인 경험을 통해 ‘여성의 삶’을 반추해보는 생활문학 칼럼을 개설했습니다. 필자 윤춘신님은 50여 년간의 생애를 돌아보며 한부모로 살아온 삶 이야기, 어머니와 할머니와 외숙모 이야기, 일터 이야기, 그리고 딸과 함께 거창으로 귀농한 현재이야기를 들려줄 것입니다. -편집자 주 엄마는 서서 밥을 먹는다. 밥 먹을 시간조차 없다는 듯이 국 대접에 말아놓은 밥을 한 숟가락 퍼 넣고 움질거리는 동안 일거리를 찾는다. 몇 번인가를 물었다. 엄마 왜 그래. 무슨 밥을 그렇게 먹어, 라고 물어본 적이 있다. 서서 먹는 밥이 편하다는 엄마가 천덕스럽게 보였다. 논둑에 번지는 개망초 한 움큼을 캤다. 빨간 플라스틱 바구니에 쑥이며 냉이까지 범벅이 되게 캐서 담았다. 실 가닥 같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