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발: 덧씌우거나 제거된 정체성의 기록 어떤 말에는 주술적 기운이 깃들어 있다. 사실보다 바람의 효용이 센 병실에서 오고가는 말들이 주로 그랬다. J언니의 수술실 밖에서, 치료차 입원한 병실에서, 어둡고 습했던 그의 지층 집에서 내가 한 거의 모든 말에도. 다른 누가 아닌, 말하는 자신이 듣고 믿고 싶은 말들. 그런 말들은 꼭 두 번씩 발화된다. 괜찮을 거야. 괜찮을 거야. 검사 결과를 전하는 J언니의 목소리가 너무 덤덤해서 내가 뭘 잘못 들은 게 아닐까 의심하면서도 나는 그렇게 두 번 말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걱정 좀 덜하고 살 걸…” 언니의 그 말에도 주술적 기원이 실리지 않았을까. 몽땅 다 거짓말이어서 앞으로 걱정 덜하고 살게 해주세요, 해주세요, 하는. 몇 번의 경험을 지나온 지금에야 무거운 ..
[만만찮은 그녀들의 이야기] 밥 많이 먹는 색시 페미니스트 엄마와 초딩 아들의 성적 대화 저자인 엄마와 초딩 아들이 성을 주제로 대화를 나누는 장면들이 기록되어 있다. ‘성적(性的) 대화’라고 해서 특별한 것이 아니다. 여자 엄마가 겪어온, 혹은 지금 겪는 일상이고, 다른 한편에 www.aladin.co.kr 와 는 섬뜩한 블랙코미디의 1, 2부쯤 된다. 주인공 남자가 밥을 많이 먹는다며 자기 마누라를 패 죽인 뒤에 창자 속을 들여다보는 장면은 하드코어 포르노그래피 못지않다. 또 새 마누라가 몸을 열어 숨겨뒀던 거대한 입을 드러내는 장면은 괴기스러움에 소름이 돋는다. 그런데도 디지털 한국구비문학대계에 실린 수십 편의 녹음 파일을 들어보면, 이야기판의 분위기는 자못 유쾌하다. 대부분 여성인 이야기꾼들은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