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다닐 때 그 이름도 이상한 ‘강제+자율’학습에 반대하고, 두발제한명령에 항의하고, 학생들이 직접 선거를 통해 구성하는 학생회를 만들기 위해서 나섰을 때, 우리가 학교와 선생님들로부터 늘 들었던 얘기는 “학생의 본분은 공부하는 것이다”라는 말이었다. 생각해보면 라디오 프로그램에 사연을 보냈을 때도, 좋아하는 가수의 콘서트에 갔을 때도, 뒷동네 아주머니들과 저녁에 2인조 배드민턴을 함께 쳤을 때도, 학내 서클에 가입했을 때도, 친구들과 여행을 가겠다고 부모님께 허락을 받을 때도, 주위 어른들은 잊지 않고 “학생의 본분은 공부하는 것”이라는 말을 했다. ‘본분’이라는 말을 사전에서 찾아보니 “사람이 저마다 가지는 본디의 신분”, “의무적으로 마땅히 지켜 행하여야 할 직분”이라고 되어 있다. 그러니까 ..
“선생님, 저 그날 독후감 일곱 개 다 쓰고 잤어요!” 자리에 앉자마자, 예슬이가 말했다. “일곱 개를 다? 정말 대단한데!” 내 말에 어깨를 으쓱해 보이며, 스스로를 자랑스러워하는 표정으로, “그렇죠! 아마도 전 천재임에 틀림없는 것 같아요.” “내가 봐도 그래. 예슬이는 천재임에 틀림없어! 참, 수진이 지난 주에 못 나온 게 혹시 방학숙제 때문?” “그건, 아닌데…….” 지난주에는 수진이가 오지 않아, 지민이, 예슬이와 수업을 했었다. 아래층에 살고 있어, 할머니께서 직접 올라오셔서 수진이가 오늘은 뭘 하느라고 공부를 하지 못할 것 같다고 알려주신 터였다. 난 이유는 묻지도 않고 알겠노라고 대답을 드렸었다. 그리고 수업을 시작하려는데, 예슬이가 내일이 개학이라는 사실과 독후감 숙제를 오늘 내로 일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