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선량한 차별주의자”인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김지혜 작가의 [선량한 차별주의자] 서평 에세이 “차별이 없다는 생각은 어쩌면 내가 차별하는 사람이 아니길 바란다는 간절한 희망일 수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오히려 그렇게 믿고 있는 사람이 역설적으로 차별을 하고 있을 가능성은 높다.”(김지혜 p26) 김지혜 강릉원주대 다문화학과 교수의 저서 창비, 2019 “세상 많이 좋아지지 않았나요?” 어느 날, 사람 좋은 지인 D가 환하게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드라마에나 나올 법한 폭력적이고 부정의한 일이 더 드라마틱하게 매일 벌어지는 세상이 뭐가 좋아졌다는 걸까? 그는 이렇게 좋아진 세상에 사니, 늘 감사하며 산다고 한다. 감사할 게 거의 없을 듯한데도 늘 감사해하며 일하는, 우리 아파트 미화원 아주머니를 ..
집을 ‘빌려 쓰는’ 사람들의 사회를 만들자내 집 마련하지 않아도 잘 살아갈 수 있어야 민주주의 사회 이 사회에서 내가 어떠한 위치에 자리하고 있는지, 어떤 사람으로 불리는지 새삼 깨닫게 될 때가 있다. 가령 나를 ‘증명’하기 위한 서류를 작성하면서 ‘무주택자’라는 항목에 체크를 해야 할 때다. 씁쓸한 마음과 함께 한편으로 왜 내가 무주택자인가? 의문도 든다. 엄연히 지금 살고 있는 집이 있는데, 그 집이 내 소유가 아니라는 이유로 집 없는 사람으로 분류되다니. 이렇게 사는 건 불완전한 삶이라는 의미일까? 혹은 누군가에게는, 당신이 살고 있지만 그 열악한 공간은 진정한 집이 아니라는 메시지를 은근 전달하는 것일까? 그런 거라면 ‘집 아님’(비주택) 논의라도 실컷 해볼 텐데, 이 사회가 분명하게 구분하는 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