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머리 짧은 여자, 조재] 애인을 애인이라 부르지 못하고… S가 놀러왔다. 대한민국 지도 끝과 끝에 떨어져서 사는 우리는 퀴어문화축제를 계기로 친구가 됐다. 부산에서 꼬박 5시간. S는 눈을 보고 싶어 했다. 부산에서는 쌓인 눈을 보기 어렵다나. 마침 S가 오기 전날 이곳에는 눈이 펑펑 쏟아졌다. 나는 아빠에게 친구가 부산에서 놀러오는데 눈이 와서 다행이라며 재잘거렸다. 아빠는 “눈 구경 제대로 하겠네” 하시더니 대뜸 네가 부산에 무슨 친구가 있냐고 물어왔다. 인간관계의 폭이 워낙 좁기에 아빠는 내 친구들을 어느 정도 다 꿰고 있었다. 순간 당황했지만 생각보다 말이 먼저 튀어나왔다. “봉사활동하면서 친해졌어요.” 갑자기 무슨 봉사활동이냐고 다시 물어올까 걱정했지만, 다행히 아빠는 더 물어보지 않았다..
속내를 감추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장편소설 를 읽고 “부모님은 아세요?” 살면서 동성애자를 본 적이 한 번도 없다는 사람들을 가끔 본다. 그럴 리 없지 않은가.사람들이 바글대는 공간, 이를테면 학교, 대중교통, 대형마트, 시청을 비롯한 관공서, 병원…에 이르기까지 그 많은 곳을 다니면서 동성애자를 한 번도 본 적이 없다고 말하는 것은 대단한 권력이다.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권력, 원한다면 영원히 무지할 수 있는 권력이다. 상대방이 자신에게 동성애자인 것을 드러내지 않았는데 어떻게 그걸 알 수가 있겠냐고 반박할 수 있겠다. 사실 정체성이라는 건 부러 감출 필요도, 드러낼 필요도 없는 것이다. 그게 자연스럽다. 하지만 누군가 의도적으로 자기 정체성을 감춘다면, 당연히 이유가 있기 ..